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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fe] '8년 10개월'의 개발자 소회.1 - 회고록

MB Brad KWON 2022. 6. 6. 22:05

Prolog


3. 기사, Knight (2017~2019)

나의 개발자로서의 커리어의 여정은 세 번째 회사에 당도하기에 이른다. 세 번째 회사는 나의 커리어의 전환점이자, 내가 가지고 왔던 생각과 활동들을 모두 할 수 있게 해 준 회사였다. 처음으로 이 회사에서 임원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만들었던 회사인 것 같다. 물론 결론부터 말하자면 Tech Lead까지 맡았으나, Manager로서의 트랙은 이행하기 전에 퇴사했다. 워낙 욕심도 많았고 책임감도 많았던 지라, 3번째 회사에서는 직책이 많을 때는 겸직을 포함해서 5가지의 직책을 수행한 적도 있었다. 그저 손만 들어주면 뭐든 시키는 회사가 어떤 때는 좋았으나, 어떤 때는 야속했던 애증의 관계였던 것 같다. 세 번째 회사에 와서 가장 먼저 했던 일은…. 물론 회사 일도 있지만…. 강연이었다. 나는 이때까지 선배들 덕분에 커리어나 취직에 도움이 되었던 적이 딱히 없었다. 학교 동문의 관계가 약한 것도 있지만, 마치 자기가 다 안다는 것처럼 꼭두각시 부리듯 시키는 일부 선배 분들의 횡포도 꼴 보기 싫은 것도 한몫했다. 그저 이때까지 묵묵히 나만의 방식대로 걸어왔다. 물론 직장 선배들의 업무 방식이나 사고를 벤치마크는 했다. 그 부분에 대해서 나에게 자극을 주고 힘을 주었던 직장 동료 및 선배 분들에게 감사하다. 어쨌든 이런 부분에서 이렇다 할 도움이나 조언을 받지 못하다 보니, 나라도 지금 개발자로서의 커리어를 시작한 친구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어진 때이기도 하다. 이때부터는 나름 한국에서 개발자 커리어로서 빛을 발하는 시기이기도 했고, 보상이나 타이틀이 남부럽지 않은 시기기도 했다. (솔직히 얘기하면 부러운 사람이 없지는 않았다. 항상 꼭대기인 줄 알고 올라가 보면, 더 잘난 사람들이 있더라…. 허허) 우연치 않은 기회로 군대 시절부터 알던 동생이 요청한 인터뷰와 대학시절부터 알아왔던 누나의 강연 제안으로 인해서 내가 가져왔던 생각들이 현실화되는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실력이 없는 사람을 띄워줄 수는 없지만, 실력이 있어도 뽐내지 못하는 친구들에게 관리하고 뽐내고 어필하는 법을 알려주고 싶었던 생각이 컸던 것 같다. 그래서 이 시기에 크게 2가지의 강연을 했었다. 하나는 내가 어떻게 공부했고 어떻게 커리어를 쌓아왔는지였다. 이것은 그냥 라떼 이야기이다. 그래도 최대한 도움을 주기 위해서 유익한 에피소드를 위주로 모아서 강연했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이력서, 면접, 이직, 협상 노하우 등에 대한 것이었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여정이지만 그동안의 커리어 관리와 이직 노하우 등을 정리했던 것이었다. 강연뿐만이 아니라 나에게 이메일로 요청 주시는 분들에게 늦더라도 꼬박꼬박 답장하면서 질문에 답변을 드리고 있으며, 이력서 수정이나 나름 면접의 노하우 등을 알려드리고 있다. 지금도 꾸준히 하고 있으며, 나름 이렇게 도움받은 분들이 보다 나은 직장을 다니고 계신다. 소위 ‘네카라쿠배당토 (네이버, 카카오, 라인, 쿠팡, 배민, 당근 마켓, 토스 등)’ 등의 IT 주요 회사들에 다니는 분들이 여럿 있다. 실력은 있지만 이를 관리하고 어필할 수 있는 기회나 여력이 없는 분들을 끄집어내어 빛나는 보석으로 가공하면 이 또한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일일 수밖에 없다. 이 분들이 나중에 내 장례식장에서 향 하나씩만 꼽아주셨으면 하는 작은 소망이…. ㅎㅎ

그렇게 회사 내외에서 여러가지 활동을 이어가던 중에 2019년에 또 다른 기회들이 왔다. 하나는 WWDC 참석이고, 그 외 전사 활동(기술성장 위원회, AppTech 위원회)과 대외 활동(개발자 모임 주최)의 기회들이다. 모두 세 번째 회사에 있었기에 가능한 부분이었다. 그래서 대내외적 인터뷰에서도 세 번째 회사는 개발자로서 꼭 다녀보라고 항상 추천하고 있다. 그중 가장 처음으로 의미 있었던 일은 WWDC 참석이었다. 세 번째 회사를 들어갈 때부터 WWDC로 미국 출장 가고 싶다고 노래를 불렀던 ‘나’이다. 여러 가지 말 못 할 우여곡절들이 있었지만 운 좋게도 결국 WWDC를 통하여 미국 땅에 당도하기에 이른다. 샌프란시스코(이하 ‘샌프란’)에 도착해서 도시 구경도 하고, 샌프란의 IT 회사들을 찾아다니면서 돌아다니기도 했다. 그리고 한국 개발자들과 밤마다 술을 기울이면서 개발 얘기를 하는 것 또한 즐거움이었다. 산호세에서 맛있는 과일과 오드왈라 주스와 함께 여러 가지 세션을 듣고 다니고, 저녁에는 여러 개발자들과 어울려 얘기하면 이보다 좋을 수 없다. 틈틈이 실리콘 밸리 사이사이를 여행 다니면서 관광을 즐기기도 했다. 관광에 대해서는 따로 계획을 못 했지만….. 카카오 뱅크(이하 ‘카뱅’)에 다니는 친한 형과 모바일 리더님에게 신세를 지면서 같이 돌아다녔다. 신세를 지는 처지인지라, 되지도 않는 영어 실력으로 통역 머신 역할을 하고 다녔다. 진짜 아름다운 날씨와 광활한 대지가 뿜는 아우라로 인하여 거기서 보냈던 시간들을 인생에서 돈 주고 살 수 없는 감정과 경험들을 선사했던 것 같다. 그 이후 COVID-19로 인하여 외국 길이 막혔지만, 아직까지도 그때의 시간들을 생각하면 가슴 한편에서는 설렘이 일어난다. 아직도 카뱅에 신세 졌던 분들을 생각하면 감사함과 즐거운 추억이 회상된다.

기술성장 위원회(이하 ‘기성위’)라는 전사 활동은 나에게 정말 의미있는 활동이었다. 그전에도 외부 강연을 다니면서 이야기와 노하우를 공유하고 다녔지만, 본격적으로 이를 제도와 시스템으로 녹여 넣어서 공유했던 기회였기 때문이다. 기성위에서는 전사적으로 교육, 공유 등의 주제로 여러 가지 콘텐츠와 모임을 주도적으로 만들어 갈 수 있도록 활동한다. 신입사원 교육 시스템이나 사내 기술 교육과 공유 세션 주최뿐만 아니라, 사외에서 활동하는 분들과 조우하여 개발자 행사도 주최하기도 했다. 나 또한 사내에서 여러 가지 강연을 하였고, 실력 있는 분들과 유명하신 분들을 초청하여 여러 가지 강연 자리를 마련하였다. 이때 강연 요청을 할 때면 고민 없이 흔쾌히 참여해주셨던 분들과 고민 끝에 어려운 결정으로 강연해주셨던 분들을 생각하면 아직도 감사하다. 그리고 이때의 인연으로 아직도 소소히 만나면서 담소를 나누는 분들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개발자는 아니지만 기성위의 활동을 위해서 여러모로 지원해주셨던 유관 부서 분들께도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2019년에는 부서 이동이라는 이벤트 또한 있었다. 처음에 배치받았던 조직은 덩치가 크고 회사에서 제일 중심이 되는 서비스를 개발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회사의 간판이 되는 서비스인 관계로 격무와 원론적 기초부터 개발 기술의 한계까지 모두 경험했던 것같다. 이때 담당했던 서비스를 통해서 회사 창립 이래, 최고이자 최악의 서비스 대규모 업데이트도 있었다. 최고이자 최악이라고 말한 이유는 고객들의 호불호가 강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도 잘 운영되고 있는 것을 보면 나쁜 선택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솔직히 나라의 정세와 대중의 여론 때문에 등 떠밀려서 업데이트한 느낌도 없지 않아 있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그렇게 첫 조직에서 일하던 중에, 큰 조직이 아닌 작은 조직으로 가서 보다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싶었다. 다행히도 이때까지 대외 활동을 열심히 하던 시기였던 지라, 회사 내의 여러 조직에 알고 있는 분들이 있었다. 그중에서 이 시기에 가장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던 AI/ML 관련 조직으로 이동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고 이동하게 된다. 이 때 당시에 이동했던 조직은 주니어 분들이 대부분의 구성원이었다. 먼저 근무하고 계시던 시니어 분께 얘기를 들었던 지라, 이 상황에 맞춰서 무엇을 해야 할지 구상을 미리 했었던 것 같다. 나의 주니어 시절은 어땠는지에 대해서 돌아보기도 했다. 나의 주니어 시기는 시장에서 뒤처질까봐 두려워서, 뭐라도 공부하고 자극받을 수 있도록 나를 마구 던지던 시기였다. 내가 주니어 분들을 던져버릴 수는 없지만, 자극받을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처음에 1~2달 정도 일해본 결과, 주니어 분들께서 product를 만드는 일에는 전혀 이슈가 없었다. 단지 detail한 부분에서 보이는 이슈들이 있었다. 어떤 기술을 왜 쓰는지에 대한 고찰과 메모리/프로젝트 관리와 디자인 등에 대한 부분들이었다. 조직 내에서 스터디도 만들고, 메모리 관리와 디자인 등에서 발생할 수 있는 문제와 상황들을 자꾸 만들어서 스스로 고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다. 사람은 스스로 느끼지 않으면 잘 바뀌지 않는다. 물론 중간중간에는 직접적으로 얘기한 경우도 있었지만, 최대한 스스로 느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것 같다. 아마…. 이때 같이 일 했던 분들이 이 글을 보게 될 확률이 높지만….. 욕을 하시려면 맘 속으로 하셨으면 좋겠다. 솔직히 욕은 안 나오실 거라고 믿는다. Deview 등의 큰 발표 자리에도 같이 참여했고, 같이 협업하던 Line과의 의사소통을 위해 일본어 스터디도 만들어 계속 발전하고자 하는 자극을 불어넣는 역할을 자처했던 시기였던 것 같다. 물론 시켜놓고 관망할 수는 없는지라, 나도 같이 참여를 했고… 덕분에 나에게도 여러 가지 경험과 지식이 남는 좋은 기회였다.

4. 위원회, Council (2019~2021)

퇴사할 때 까지 기성위와 AppTech 위원회(이하 ‘앱테크’) 활동을 쭉 이어갔다. 기성위 활동은 이전 조직에서부터 해왔었다. 조직 이동을 하면서 Tech Lead (이하 ‘TL’) 직책을 받고 나서 앱테크에 속하게 되었다. 앱테크에서의 활동은 기존의 활동들하고는 또 달랐다. 세 번째 회사는 20년 동안 많은 노하우와 기술들을 축적한 명실상부한 IT 회사였다. 그런데 이 부분이 서버와 웹 영역에 국한된 부분도 없지 않아 있었다. 물론 앱 개발자 분들 중에 훌륭하신 분들이 많다. 특히 저와 함께 일했거나 소통하던 분들은 대한민국에서 상위 1%에 들어가는 최고의 앱 개발자들이라고 자부한다. 단지 회사 내에서 모바일 앱 개발자들에게 필요한 기술 표준이나 공통의 인프라 플랫폼의 부재에 대해서 얘기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 앱테크라는 조직을 만들었던 것이다. 여기에는 각 모바일 개발 조직의 이사 분들과 리더 및 TL 분들이 참여하게 되었다. 나는 솔직히 앱테크에 들어가기에는 짬밥이 미비했지만 TL이라는 직책과 전사 및 대외 활동에 적극적이라고 나름 소문이 나있었던 지라 참여하게 되었다. 너무 경력 차이가 많이 나는 분들과 일하게 되면서, 이때부터 경력이 몇 년이라는 얘기를 슬슬 피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솔직히 한 손으로 셀 수 없기 시작하면서, 경력을 세는 것이 귀찮기도 하고 포기한 부분도 있다. 회사 보안 규정에 위배될 수 있는 상황인지라 자세히는 말할 수 없지만, 회사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기술 표준이나 인프라에 대해서 각 부문별로 사람들을 나누어 토론하고 개선하는 자리를 마련했었다. 이 중에서 나는 인프라에 관한 부분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이 시기에 모바일 개발 인프라와 자동화 등에 한창 관심을 가지면서 backend와 dev-ops에 대해 공부를 하던 시기였기도 하다. 이때 경험했던 것들을 같이 했던 사람들과 Deview 2021 (* Deview 2021 발표 영상)에서 발표하기도 했다.

여러가지 활동으로 바쁘게 보내던 와중에 커리어를 좀 더 다른 차원으로 발전시키고 싶은 고민이 들기 시작했다. 예전에는 막연하게 ‘관리자의 역할을 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개발을 할수록 서비스 전체를 바라보면서 이끌어나가는 역할을 수행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나와 같이 일했던 분들은 나의 모습을 통해서 그런 욕심들을 조금 느껴졌던 것 같다. 그렇게 실험적으로 시작하는 작은 프로젝트를 하나 맡게 되었다. 그리고 서비스의 전체적인 그림을 보기 위해서 backend 영역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던 시기도 이때였다. backend에 대해서 지식이 거의 전무했던지라, 다른 조직의 프로젝트에 거의 깍두기로 들어가서 어깨너머로 배우고 있었다. 궁금한 것도 여쭤보면서 공부해 나아갔다. 이때 대략 2년 정도의 기간 동안 backend를 공부하고 개발했던 것 같다. 돈 값은 해야 하는지라, mobile SDK 개발을 병행하면서 배웠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너무 서툴렀고 책임을 위임하는 방법에 대해서 너무 어려워했다. 특히 아까도 말했지만 나보다 경력이 높은 분들과 협업하면서 나 혼자서 쓸데없는 눈치를 보던 시기이기도 했다. 정작 다른 분들은 신경 안 쓰는데, 내가 눈치를 봤다. 그때 당시에도 ‘일은 일이다.’라는 생각은 했지만 몸이 적응하지 못했던 것 같다. 물론 서서히 시간이 지나면서 적응하기는 했지만, 이런 부분들이 일을 함에 있어서 이 시기에 어느 정도 장애물처럼 작용했던 것 같기도 하다. 안타깝게도 중간에 나가게 되어 개발하던 서비스를 출시는 못했지만…..

2020년은 인류 역사상 큰 사건이 발생하면서, IT 업계에도 새로운 바람이 불어왔다. COVID-19 라는 전염병의 대유행이 시작된 것이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고, 비행기의 대중화로 세계 여행이 보편화되기 시작한 이후에 처음으로 발생한 전 세계적인 재앙이었다. 물론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긴 하지만 말이다. IT 업계에서는 이로 인해서 재택근무라는 업무 형태가 자리 잡기를 시작했다. 물론 몇몇 회사에서는 나름 획기적인 시도로 재택근무를 도입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이처럼 전사적이고 체계적으로 발 빠르게 도입한 경우는 처음이었다. 재택근무 초기는 서로가 너무 힘든 시기였다. 출근과 퇴근의 경계가 허물어진 세상에서 사람들은 업무 시간의 경계가 흐릿해졌다. 밤 9시나 10시에도 메시지와 업무 요청이 난무했다. 안타깝게도 출근할 필요 없이 책상에 앉아서 바로 업무를 할 수 있는 환경이었던지라, 우리들도 날아온 업무 요청을 무시할 수만은 없었다. 그렇게 서로 끝나지 않는 업무 시간 속에서 지쳐갔던 것이 재택근무 초기의 고통이었다. 이윽고 2~3개월 정도가 지나서야 서로 지쳐가던 상황을 인지하고 무언의 약속처럼 업무 시간의 흐릿한 경계가 다시 생기기 시작했고, 다들 흐릿한 업무 시간의 경계를 지키기 시작하면서 재택근무에 서서히 적응하기 시작했다.

* 여기까지 적고 이후의 내용은 최근 일들과 연관이 큰 관계로 소회를 마무리하려고 한다. 나중에 좀더 얘기를 나누거나 글을 공유하는 기회를 가지면 좋을 것 같다. 그럼 이만…. 방콕, 카오산 로드에 있는 스타벅스에서….


5. 저항군, Rebel (2021~)

현재 진행형…

https://youtu.be/MiJu6kZenuk